Doro-Chiba Quake Report No. 30
(201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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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鐵鬪爭の火を消してはならない!
―4者4團體の ‘鬪爭終結’に際して訴える―

국철투쟁의 불을 꺼서는 안 된다!
-- 4자 4단체에서 밝힌 ‘투쟁 종결’에 즈음하여 호소한다 ?
투쟁 깃발을 내려서는 안 된다

지난 6월24일 국철분할민영화 해고철회를 위한 원고단과 국철투쟁공투회의가 ‘투쟁 종결’을 밝혔다.
같은 날 열린 공투회의 총회에서 니헤이 의장은 “정당 관계자가 ‘JR 고용은 제로’라고 말했다. 불만이지만 더 이상 전망이 없다. 공투회의도 투쟁을 종결하고 6월30일에 해산하고자 한다.”라고 제안했다. 참석자들 중에서 “정부와 JR의 대응이 못된 것은 예측할 수 있던 일이다. 그보다 지난 1년 동안 아무 운동도 안 해 온 것이 납득할 수 없다. 이러면 어중간하다.” “JR 7개사의 성명을 인정 못한다. 공투회의 해산을 반대한다. 고용을 거부한 JR에 하의해야 된다.” “당사자 중에도 납득 못 하는 사람이 있다.” 등등 반대와 항의의 목소리가 잇따랐지만 ‘투쟁 종결, 해산’은 이미 사무실 철수까지 포함하여 다 준비된 일이며 되돌아갈 수 없는 일이었다. 신문에서도 “24년 넘게 벌여온 투쟁은 뒷맛이 안 좋은 결말을 맞이하였다”라고 보도했다. 4자 4단체(*)는 ‘고용’을 포기하고 최종적으로 투쟁의 깃발을 내렸다.

‘투쟁 종결’에 이른 경위
‘고용문제 해결’의 내용은 작년에 나온 정치적 해결안에서 “정부에서는 JR 고용을 위해 노력한다. 단 JR에 대해 채용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는만큼 인원수 등 희망대로 채용될지는 보증할 수 없다”고 내놓은 것이었다. 정부에서 애초부터 진심으로 고용을 확보할 생각이란 없었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었다.
한편 4자 4단체에서는 “고용이 없으면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 “고용이 없으면 거리를 헤매야 되고 패배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JR에 대한 요청행동과 지방의회 등에 대한 요청은 그만둔다. 정치 창구에 맡기는 게 최선의 길”(작년 7월 국철노동조합 대회)이라는 것이 ‘방침’이었다. 즉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이다. 또 지난 3월에는 대지진을 이유로 해서 ‘고용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을 중단합니다.’라는 4자4단체 성명이 밝혀졌고 5월에는 국노(국철노동조합)본부 하마나카 서기장(사무국장)이 “고용문제 해결은 지진 발생 이후 꽤 어려워진 것으로 본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는 ‘고용 따위는 필요없다’고 밝힌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 국민신당, 사민당 등 3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국토교통성에서 지난 6월13일 JR 7개사에 ‘고용’을 요청했으나 JR측에서는 당장 7개사 연명 글을 제출하여 이를 거부했다.
국토교통성은 이러한 JR의 대응에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하지만 JR홋가이도와 JR규슈, JR화물의 주식은 지금도 정부가 100% 보유하고 있으며 그 권한을 행사하면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JR측에서는 정부에 해결의지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한편 4자 4단체에서는 이러한 사태에 항의성명조차 못 내고, ‘더 이상 전망이 없다’고 느닷없이 투쟁종결을 선언한 것이다.
블로그 등에서는 많은 투쟁단원들이 분노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외면당하고 투쟁이 어이없이 내팽개쳐졌다.

무엇을 위한 투쟁이었던가
1047명투쟁은 한사람 한사람의 투쟁단, 쟁의단과 그 가족들에게는 24년이나 되는, 말 그대로 인생을 건 투쟁이었다. 그것이 이런 식으로 끝나도 될 리가 없다. 무엇 때문에 24년 동안 투쟁해 온 것인가? 국노 본부를 비롯한 4자4단체 간부들의 속셈으로 긍지를 짓밟히고 농락당해도 될 리가 없다.
특히 국노 본부는 애초부터, 부당해고된 조합원들을 온 힘을 다해 지켜내고 지원하려 하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해고자는 ‘짐’이었다. 명분과 본심이 하늘과 땅처럼 떨어진 상황에서 투쟁단은 어려운 생활과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고 투쟁은 국노 본부와도 거세게 충돌할 수밖에 었었다. 그럼에도 1047명 투쟁은 빛과 힘을 잃지 않았다. 그 모든 과정을 지탱해 준 것이 전국의 지원 동지들이었다.

4자 4단체 구성을 계기로 투쟁 양상이 일변되었다. 정부와 JR에 대한 대중적인 투쟁은 방기되었고 민주당에 ‘백지 위임장’을 내는 등 정치공작만이 ‘운동’이 되었고 현장에서는 자본과의 ‘포괄 화해’가 추진되었다. 민영화와 국가적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 처음에는 누구나 호소했었던 노동운동 재생을 위한 뜨거운 마음은 거의 사라졌고 투쟁의 길이와 어려움만이 강조되게 되었다. 이번 투쟁 종결에서도 그 이유를 ‘일단락 지어 주지 않으면 투쟁단이 불쌍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 결과 생긴 것은 투쟁단의 생활과 투쟁을 지탱하는 지원 힘의 이반이며 정부와 렌고(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한편 투쟁 유지를 호소하는 사람은 ‘방해 세력’으로 불리는 본말전도된 모습이었다.

‘정치적 화해’ 이후 1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일
이러한 상황에서 작년 4월9일 ‘정치적 화해’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는 ‘인도적 해결’의 이름 아래 민영화와 국가적 부당노동행위에 의한 대량해고, 휘몰아친 노조파괴 공세의 사회적 책임과 법적 책임을 불문 붙이는 것이었다.
그 이후 1년. 누구나 외면해서 이야기하려 하지 않지만 현실에서 진행된 것은 노동운동과 그 미래에 있어서 심각한 사태였다.
국노는 ‘화해’하자마자 투쟁단원들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고 렌고 가맹 의지를 표명했으며 ‘앞으로는 제대로 된 기업내 조합이 된다’며 취업규칙 그 자체인 ‘종합노동협약’ 체결을 JR에 제안했고 올 7월 국노 전국대의원대회에서는 JR에 고용된 사람만을 조합원으로 규정하는 ‘규약 개정’안까지 제출될 예정이다.
2차대전 이후 일본 노동운동의 견인차였던 국노, 그렇기 때문이야말로 국철분할민영화 공세의 화살이 집중된 국노가 1047명 투쟁의 깃발을 내리자마자 이렇게까지 전락했고 그리고 지금 ‘투쟁 종결’을 밝힌 것이다.

승리의 전망은 투쟁 속에 있다
1047명 투쟁은 국철분할민영화로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대항력이자 반격의 거점이었다. 국철분할민영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생기고 그 이후 노동운동이 얼마만큼 후퇴해야 되었는지, 노동자들이 얼마나 가혹한 현실에 놓이게 되었는지. 이를 생각했을 때 1047명 투쟁이 이런 식으로 깃발을 내렸을 때 노동자의 권리, 노동운동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그러한 시대에 대한 위기심을 갖고 작년 6월 ‘국철투쟁의 불을 꺼서는 안 된다’고 하소하며 국철분할민영화를 반대하고 1047명 해고철회를 지원하는 전국운동 (국철투쟁전국운동)을 출범시켰다. 이 호소는 발기인을 선두로 한 전국 동지들의 노력에 의해 크게 확산되고 있다. 40개 지역과 사업장에 전국운도의 지방조직과 지원하는 회가 구성되었고 새로운 투쟁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가 이 운동을 통해서 지향하는 것은 첫째로 노동운동의 후퇴와 권리상실의 원점이 된 국철분할민영화를 절대로 얼버무리지 말고 해고철회를 쟁취하는 것, 둘째로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는 전국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을 만들어내는 것, 셋째로 아무리 작은 싹일지라도 현장에서 자주적인 투쟁을 만들어낼 것, 넷째로 전국의 힘으로, 해고된 동지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도로치바는 지난 1년 동안 5 차례 파업으로 전면적인 업무 위주화 공세를 저지했다. 잇따른 조직와해 공세와의 어려운 투쟁 과정이었지만 JR치바지사에서는 10년 동안 검사수선과 구내운전 업무의 외주화를 계속 저지하고 있다. 이 투쟁 와중에서 젊은 동지들이 도로치바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의 힘은 단결에 있고 승리의 전망은 투쟁 와중에서야 생긴다. 우리는 아무리 어려울 때라도 이 원점을 잊지 말고 계속 투쟁할 것이다.

노동운동의 위기와 국철투쟁
지난 3월11일에 발생한 대지진과 원전사고를 계기로 정세는 일변되었다. 고농도 방사선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위기에 노출되었고 이미 전국에서 수십만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거리에서 헤매고 이재 지역의 비참한 현신을 명분으로 정부 호령 아래 공무원노동자의 임금이 삭감되고 농어민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대형 증세와 사회보장제도 해체 공세가 닥치고 있다.
분노의 목소리가 사회 구석구석까지 가득 찼으며 시위가 되며 정부와 도쿄전력에 대한 항의행동이 되며 살아내기 위한 투쟁이 되고 타오르는데도 노동운동의 심각한 위기가 생기고 있다. 많은 노동조합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항의의 목소리조차 안 내고 ‘부흥’의 이름 아래 애국주의와 거국일치가 부추겨지는 가운데 계급적 관점과 투쟁이 방기되고 있다.
 
JR의 현장에서도 작년의 ‘정치적 화해’를 계기로 ‘국철분할민영화의 총결산’이라고도 할만한 공세가 시작되었다. JR동일본회사는 국철노동운동의 최종적인 해체를 위해, 분할민영화 이래 취해 온 JR동노조와 결탁한 현장지배-노무정책을 대재편하려고 내디뎠다. 그 전제가 된 것이 1047명 투쟁의 ‘정치적 화해’와 국노의 노자협조노선으로의 전락이다.
전면적인 업무 아웃소싱을 통한 고용파괴와 비정규직화, 차량기지 등 현장 대재편을 통한 단결 파괴, 임금제도 개악 등 ‘민영화 완성’을 위한 대 노동자 공세가 거칠게 몰아치고 있다.
우리는 해고 철회-외주화 저지 투쟁을 핵심으로 이 공세에 조직의 총력을 다해 맞서, 그 와중에서 반드시 조직확대를 이뤄낼 결의를 다지고 있다.

국철투쟁의 불을 끄지 말자
우리가 국철투쟁에서 추구해 온 과제가 더욱 보편화되며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국철투쟁의 불을 절대로 꺼서는 안 된다. 노동운동의 부활이야 이 시대에 요구되는 최선단의 과제다. 우리는 그것이 아무리 어려운 과제일지라도 확신을 갖고 이 길을 나아갈 것을 결의했다. 국철투쟁의 불을 끄지 말자. 1047명 해고 철회, 업무외주화 저지, 신자유주의, 지진해고와 맞서 싸우는 반 원전 - 반 실업 대투쟁을 만들어내자.
전국의 동지들에게 호소합니다. 저희는 계속 투쟁할 것입니다. 국철투쟁 전국운동과 도로치바 투쟁의 더욱더 힘찬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2011년 7월1일
국철치바동력차노동조합 (DORO-CHI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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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자 4단체
- 4자: 국노투쟁단전국연락회의, 철도건설공단소송원고단, 철도운수기구소송원고단, 전동노쟁의단-철도운수기구소송원고단
- 4단체: 국철노동조합, 전일본건설교통운수일반노동조합, 국철투쟁지원종앙공투, 국철투쟁에 승리하는 공투회)

 

국철지바동력차노동조합(DORO-CHI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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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 +81-43(222)7207 FAX +81-43(224)7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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