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치바의 반합리화-운전보안투쟁노선
2008.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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動勞千葉の反合理化-運轉保安鬪爭路線 (‘俺たちは鐵路に生きる3’より拔萃)

도로치바의 반합리화-운전보안투쟁노선

다나카 야스히로 도로치바(국철치바동력차노동조합) 집행위원장
‘우리는 철로에 산다 3’(2007년7월 발간)에서 발췌

제가 위원장에 취임한 이래 6년여의 투쟁은 JR동일본회사의 ‘뉴프론티어 21’계획으로 시작된 ‘제2의 분할민영화공격’에 대해서 반합(反합리화)-운전보안투쟁의 복권을 걸고 맞선 6년간이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저 자신이 이 6년간의 악전고투 속에서 이끌어낸 도로치바의 원점인 ‘반합-운전보안투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한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시니어 제도 - 업무외주화공격 이후 잇따라 가해진 여러가지 공격에 대한 투쟁의 일체는 반합-운전보안투쟁의 복권을 건 투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한가지, 이 과정에서 발생한 중대한 사태는 1047명 투쟁을 둘러싸고 심각한 분기와 동요가 일어난 것입니다.
시대는 바야흐로 이라크 침략전쟁을 계기로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개헌-전쟁과 민영화-노동조합파괴공격의 거센 바람속에서 도로치바도 까딱 잘못하면 날려 버려질지도 모르는 정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거대한 가능성을 가진 시대라는 의미도 됩니다. 실제로 전세계에서 노동자의 대반란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11월 노동자집회는 국제연대집회로서 크게 발전했고, 청년노동자들은 ‘혁명’을 내걸고 투쟁하기 시작했습니다.
‘반합-운전보안투쟁의 복권’은 이 시대에 어떻게 맞서나갈 것인가 하는 논의 속에서 확립된 방침이기도 합니다. 스스로의 비약을 걸고, 도로치바의 원점에서 재출발하자고 결단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이 시대에 가장 잘 들어맞는 방침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국철노동운동과 사고-안전문제
첫째로, ‘사고’‘안전’이라는 철도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절실한 문제를 국철노동운동의 긴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노동조합투쟁의 정면과제로 자리매김한 것은 후나바시사고투쟁으로 시작되는 도로치바의 반합-운전보안투쟁이었습니다.
그때까지도 미카와시마사고(1962년. 사망 155명)와 쯔루미사고(1963년. 사망 161명) 등의 대형사고가 있어서, 운전보안확립은 국철노동운동의 큰 촛점이었습니다. 이때 도로(국철동력차노동조합)본부에서는 국철당국이 설치한 ‘사고방지대책위원회’에의 참석을 둘러싸고 대회에서 집행부가 총사퇴하는 격론이 일어났지만, 운전보안확립을 위한 투쟁이 노동조합의 노선으로서 확립되기까지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또한 기관조사폐지를 둘러싼 5만명 합리화반대투쟁(1967년 - 1969년) 속에도 안전성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투쟁도 국철노동운동사상 가장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로본부는 당국의 어용기관인 ‘1인 승무에 관한 안전조사위원회’ 설치와 함께 투쟁을 집약하여 패배했습니다.
현장에는 엄청난 분노가 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고-안전에 관한 문제를 노동조합의 중심과제로 자리매김하고 당국과 정면으로 투쟁해낸 역사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국철노동운동의 현황 속에서 끝까지 ‘안전확립은 노동조합의 투쟁에 의해 당국에 강제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라는 입장에 선 것이 도로치바의 반합-운전보안투쟁노선의 핵심에 있는 사상입니다. 자본의 본질은 아무리 멋진 수식어를 쓰더라도 결국은 이윤추구입니다. 항상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안전을 위협합니다. 자본주의사회인이상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도로치바는 사고와 안전을 둘러싸고 노동자와 자본은 화해할 수 없는 대립관계에 있다는 점을 엄격히, 선명히 했습니다.

‘사고’에 대한 노동조합의 입장
둘째로, 도로치바는 안전일반이 아니라 ‘사고’라는 문제에 끝까지 집착했습니다. 노동자가 사고를 일으켰을 때, 노동조합이 어떠한 입장을 취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철도에서는 모든 사고의 책임은 사고를 일으킨 본인의 책임으로 처리되어 왔습니다. 현재도 그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고를 일으킨 노동자에게 책임이 전가되어 처분받고, 무엇하나 달라지지 않은 현실 속에서의 노동이 다시 강제됩니다. 이것의 반복이었던 것입니다.
사고를 일으키면 최악의 경우는 생명을 잃거나 혹은 그 자리에서 체포됩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긴장감없는 운전사’ 등으로 보도되고, 자신의 의견을 낼 수도 없습니다. 사고를 일으키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나 철도에서 일하고 있는 이상,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실수를 하는 법이고, 아무리 주의를 해도 사고는 일어납니다. 비록 실수를 하더라도 사고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본래의 안전대책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은 직접적으로는 이익을 내지 않고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하는 보안설비 등에 충분한 돈을 쓰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안전대책은 무시, 경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사고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은 기껏해야 당국에 처분의 정상참작을 요구하고, 나머지는 조합의 승무원공제회에서 구제를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사고는 구제의 대상밖에 안되었던 것입니다. 노동조합에 있어서도 ‘사고를 일으켜 많은 승객이 부상을 당했는데, 그것이 투쟁의 과제가 될리가 없다’라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나카노 전위원장은 후나바시사고투쟁에서 처음에 봉착한 것은 도로 내에 있었던 이러한 ‘상식’이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입장을 둘러싼 중요한 노선논쟁이었던 것입니다.
현장에서는 특히 운전사는 누구나가 ‘내일은 나에게 닥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합은 ‘투쟁이 될리가 없다’고 합니다. 이런 현실을 정면으로 문제삼지 않으면서 안전대책일반을 문제시해도 의미가 없습입니다. 사고에 대해서 어떠한 입장에 설 것인가가 노동조합에게 있어서 시금석이 됩니다.
따라서 투쟁은 ‘운전사에 대한 사고책임전가를 허용하지 말라. 모든 책임은 당국에 있다’고 단언하는 것에서부터만 시작됩니다. 현장의 분노를 체현하고, 현장의 관점을 절대로 잃지 않는 감각이 반합-운전보안투쟁의 가장 중요한 원점입니다. 이러한 투쟁을 관철해 왔기에 후나바시사고투쟁은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하고 싶었던 투쟁인 것이다’라고 조합원이 총단결, 총결집하는 투쟁이 되었습니다. 사고를 일으킨 조합원을 지켜내는 투쟁이 ‘한명은 만명을 위해, 만명은 한명을 위해’라는 노동조합의 원점을 단순한 이념으로써가 아니라, 조합원 한명한명이 절실한 과제로서 실천하여 쟁취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 투쟁은 이듬해인 1973년에 도로 치바지방본부가 우익적 체질을 벗어나 투쟁하는 집행부를 확립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반합-운전보안투쟁은 노동조합을 조합원 자신의 손으로 되찾는 투쟁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반합-운전보안투쟁의 본질은 반합리화투쟁
셋째로, 반합-운전보안투쟁의 본질은 안전투쟁이 아니라 반합리화투쟁이라는 점입니다.
안전을 위협하는 원흉은 인원삭감, 검사주기 연장, 외주화, 규제완화, 규정개악, 스피드업 등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한 합리화공격입니다. 안전은 무엇보다도 합리화공격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것과 투쟁하지 않고는 운전보안 확립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노동운동은 합리화공격에 진정한 의미에서 맞선 역사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기존 노동운동은 합리화공격 앞에 타협을 거듭하며 굴복해 왔습니다. 도로본부-가쿠마루파나 사회주의협회파는 한때 입으로는 ‘합리화절대반대’를 내걸었었지만, 실천적인 방침은 무엇하나 내놓지 못했습니다. 앞에 언급한 5만명합리화반대투쟁은 체제내적인 반합리화투쟁이 한계에 달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노동운동전체로서도 현장노동자는 합리화공격을 받을 때마다 조합집행부로부터 변명만 들어왔습니다. 노동자로서의 긍지는 사라졌고, 단결이 깨지고, 그 틈을 타고 자본이 개입하여 일본의 노동운동은 약화되어 갔습니다. 합리화는 노동밀도와 착취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단결파괴 공격인 것입니다.
자본의 본질은 끊임없는 합리화운동입니다. 합리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체제내 노동운동으로는 반합투쟁은 할 수 없습니다.
도로치바는 이 벽을 실천적으로 돌파했습니다. 자본이라 해도 원칙적으로는 ‘안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가 적의 약점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철저히 따지며 노동조합측이 반합투쟁의 주도권을 잡는데 성공했습니다. 운전보안확립투쟁을 반합리화투쟁으로서 투쟁해, 자본과의 투쟁으로 만듬으로써 그때까지의 반합투쟁의 한계를 돌파한 것입니다.
후나바시사고투쟁에서는 ‘사고책임전가를 허용하지 말라. 심판받아야 하는 것은 국철당국이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격렬한 준법투쟁과 파업을 해서 운전사인 다카이시씨의 복직을 쟁취했습니다. 이 투쟁 속에서 사고의 최대 원인이었던 위법 ‘제로호 신호기’ 철거를 요구하고, 그것을 실현했기에 다카이시씨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반합리화투쟁 태세를 취하지 않았으면 500명의 중경상자가 나온 상황 속에서 이러한 투쟁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아가, 그후의 선로개선투쟁에서는 합리화에 의한 선로 악화를 상세히 조사하여 조합지령으로 위험한 곳에서은 서행하기로 했고, 이로 인해 발생한 열차의 지연을 다음 시간표개정시 시간표에 적용시켰습니다. 이 투쟁을 통하여 그때까지의 관계를 역전시켜 시간표개정을 할 때마다 노동조건개선을 실현했습니다. 당시 이 투쟁은 ‘빼앗긴 노동조건을 되찾는, 방위에서 반격으로의 반합리화-운전보안투쟁’으로 자리매김되었습니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확립된 것이 반합-운전보안투쟁노선입니다.
끝까지 반합리화투쟁을 해나가면 그 안에서 반드시 계급적 단결이 생깁니다. 노동조합의 재생으로 이어지는 투쟁입니다. 반대의 경우는 반드시 부패하게 됩니다.
반합투쟁을 정면에서 투쟁할 수 있는 노동조합은 자본의 본질과 정면에서 투쟁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반전투쟁 등의 선두에 서서 투쟁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 되기도 합니다. 반전투쟁에 나설 수 있는 노동조합이 아니면 반합리화투쟁도 해낼 수 없습니다. 이것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입니다. 반합투쟁은 이러한 계급적 노동운동을 낳는 투쟁이기도 한 것입니다.

도로치바의 현장투쟁론
넷째로, 반합-운전보안투쟁과 일상적인 현장투쟁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장장악권을 지켜내는 매일의 현장투쟁이 없었다면 만약의 사고가 있을 때에 투쟁할 수 없습니다. 365일 부단한 투쟁이 지금의 도로치바의 단결을 만들어 냈습니다.
도로치바가 강조해 온 것은 철저한 목적의식성을 가지고 현장투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장투쟁이란 첫째로, 일반적인 저항투쟁이 아니라 현장장악권을 둘러싼 자본과의 격렬한 당파투쟁입니다. 매우 목적의식적인 투쟁입니다. 자본이 어떠한 공격을 가해 오던지 ‘이 현장은 우리가 이끌어 가고 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노동자는 긍지를 가질 수 없습니다. 긍지를 갖지 않은 노동자가 단결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사회의 주인이다’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장투쟁의 원동력은 날마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에 대한 격렬한 분노입니다. 현장을 회사가 좌지우지하게 할 것인가, 노동조합이 이끌어갈 것인가 라는 현장투쟁에 의해 도로치바의 계급적단결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현장투쟁이란 둘째로, 타락간(타락한 노조간부)에 의한 지배로부터 현장을 되찾는 투쟁입니다. 타락한 간부는 회사와 일체가 되어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흐리고 패배주의를 심어 지배합니다. 현장투쟁은 이러한 지배로부터 현장 노동자가 긍지와 현장장악권을 되찾는 투쟁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투쟁은 좋든싫든 소수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수로 시작해서 다수의 단결을 획득하는 투쟁입니다.
셋째로, 적의 약점을 철저히 공격하고, 아군의 단결을 어떻게 확대해 갈 것인가를 목적의식적으로 추구하는 투쟁입니다. 이는 모든 투쟁에 보편적으로 공통되는 과제이지만, 모든 평가축을 계급적 단결의 확대에 둔다는 관점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넷째로, 현장투쟁이란 활동가를 육성하는 투쟁입니다. 노동조합의 강도는 얼마나 헌신적이고 의식적인 활동가가 있는가로 결정됩니다. 한편, 투쟁이 없는 곳에 노동자의 의식변혁은 없습니다. 현장투쟁은 활동가를 만들어 내고, 그 활동가가 노동조합을 운영하는 힘을 배우는 가장 좋은 학교이기도 합니다. 이는 레닌이 ‘파업은 혁명의 학교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도로치바의 반합-운전보안투쟁은 이러한 관점에서 현장투쟁을 조직하고 조합원이 투쟁하는 단결을 구축하는 매일의 노력 속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반합-운전보안투쟁의 발전
도로치바의 기초를 쌓은 반합-운전보안투쟁은 그후 어떻게 발전해 갔는지에 대해서는 나카노 전위원장의 저서 ‘우리는 철로에 산다 2’(*)를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한국어판 있음)
도로본부에서의 분리-독립투쟁의 승리에 있어서도 결정적이었던 것은 사고를 일으킨 한명의 조합원을 철저히 지켜낸 반합-운전보안투쟁노선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확신이며, 그것에 반대해 온 가쿠마루파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도로본체로부터의 분리-독립투쟁은 가쿠마루파에 의한 도로 치바지방본부에 대한 터무니없는 조직파괴공격 속에서 ‘노동조합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이란 무엇인가’를 전조합원이 의논하여 진정한 노동조합, 투쟁하는 도로로 개혁하는 투쟁이었습니다. 또한 가쿠마루파가 ‘화물안정선언’이라는 형태로 반합리화투쟁 포기를 표명한 것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노동조합내부에서의 이런 격렬한 노선논쟁과 조직공방전을 통하여 조합원은 비약적으로 의식변혁을 쟁취한 것입니다.
1977∼1981년의 산리즈카 제트연료화차수송저지투쟁도 반합-운전보안투쟁과 도로대개혁을 위한 조직공방전의 승리 속에서 실현된 투쟁입니다. 도로치바의 조합원은 노동운동의 변질에 대항하고 나리타공항에의 연료수송을 저지한다는 한푼의 돈도 안되는 투쟁에 나섰습니다. 노농연대를 내걸고 자신의 해고를 내걸고 파업에 일치단결하여 일어서는 것도 하루아침에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국철분할민영화반대투쟁도 당시의 구호 중의 하나가 ‘국철을 제2의 일본항공으로 만들지 말라!’(*)였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도로치바에게 있어서는 반합-운전보안투쟁 그 자체이기도 했습니다. (*일본항공은 85년 520명이 사망한 추락사고를 냈다.)
국철노동운동 속에 존재하는 모든 세력이 국철분할민영화공격 앞에 굴복하여 전락해 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도로치바가 어떠한 길을 선택할 것인가 결단이 요구되었습니다. 모든 기존 노동운동이 이러한 공격 앞에 전혀 통용되지 않는 가짜였다는 것이 드러났습다. 계급적 노동운동인가, 체제내 노동운동인가가 국철분할민영화공격 속에서 체에 걸러진 것입니다. 반합리화투쟁을 할 수 없는 노동조합이 국철분할민영화공격에 맞설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였습니다.
나카노 전위원장은 ‘정말로 고민끝에 이 투쟁을 결단했다’‘양자택일의 선택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주저될 때는 『좌』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 생선은 대가리부터 썩는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동자의 단결에 절대적인 신뢰를 두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입니다.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국철분할민영화반대투쟁 속에서 가려져졌습니다. 그리고 도로치바는 단결을 지켜 JR체제에 쳐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노동조합에 요구되는 과제
반합-운전보안투쟁은 격동하는 정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려 하고 있습니다. 격렬한 민영화 및 규제완, 그리고 노조파괴공격 속에서 반합-운전보안확립투쟁이 차지하는 위치가 전례없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안전운전투쟁 등에 대한 무수한 격려, 국제연대투쟁의 커다란 발전, 도로치바의 투쟁에 감동한 청년노동자 중에서 ‘노동운동의 힘으로 혁명을 하자’고 정면으로 내건 획기적인 투쟁이 탄생한 점 등이 선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노동조합에 요구되고 있는 과제는 따져보면 다음 세가지입니다.
첫째로, ‘신자유주의’정책이라 불리는 약육강식의 시장원리로 노동자를 벌레같이 희생시키고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공격에 대해서 정면으로 맞서는 노선과 방침을 가질 수 있는가 어떤가 입니다.
둘째로, 노동조합의 선을 넘은 총굴복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현상을 현장에서 타파할 구체적인 운동을 어떻게 제기할 수 있는가 입니다.
셋째로, 그것을 위한 현장에서의 단결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입니다.
미리 계급적인 노동자란 없습니다. 자본의 지배, 국가권력에 의한 다양한 공격, 언론이 흘리는 선전 등 속에서 계급적인 것의 관점, 의식을 해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많은 노동자는 현실에는 자본가와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거나, 체념하고 있거나,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합니다. 그러나 노동자인 이상,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사회와 함께할 수 없으며 노동자계급은 본질적으로 혁명적인 존재입니다. 따라서 사회의 본질을 깨닫고 단결을 되찾았을 때는 반드시 커다란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절대적인 신뢰를 두고 날마다 현장에서 악전고투하며 ‘우리는 사회의 주인이다’‘단결하여 투쟁하자’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노동운동에서 요구되고 있는 이러한 과제를 타개하기 위한 핵심적인 지침이 반합-운전보안투쟁노선 속에 응축돼 있다고 봅니다.

투쟁하는 노동운동의 복권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노동자와 자본의 관계는 절대적인 대립관계에 있다’라는 입장에 엄격히 서는 것입니다. ‘노동자는 사회의 주인이며, 역사의 주인이다. 단결된 노동자의 힘은 사회를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라는 긍지와 사상을 되찾는 것, 즉 계급적 입장, 마르크스주의를 노동자가 스스로의 손에 되찾아오는 것입니다.
사회의 기본구조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미 ‘조금 수정하면 어떻게든 되’는 상황은 아닙니다. 개헌과 전쟁, 민영화와 노조파괴공격 속에서 노동자가 살아갈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노동자에게 밥을 먹일 수도 없게 된 제국주의체제, 전쟁을 하지 않으면 연명할 수 없는 제국주의체제는 이미 말기증상입니다. 노동자의 힘으로 제국주의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정면에서 호소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국철이 분할민영화된지 20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예전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일터 조건도 힘겨워진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도로치바의 투쟁은 노동자가 진정으로 단결하면 적어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왔습니다. 일교조(일본교직원노조)는 30만명, 자치노(전일본자치단체노조)는 100만명의 노동자를 조직하고 있습니다. 국로(국철노동조합)도 아직 1만명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힘이 정말로 낭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이 허용되어 버린 것은 노동조합이 정부나 자본에 굴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노동운동의 변혁을 쟁취해야 합니다.
우리가 JR 체제하에서의 20여년의 투쟁을 진정한 의미에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조직확대를 실현했을 때입니다. 또한 그것은 도로치바의 새로운 가장 중요한 원점이 될 것입니다. 이런 정세 속에서 본격적인 조직확대를 실현할 수 있다면 일본의 노동운동에 있어서 최초의 획기적인 지평을 쟁취하게 됩니다. 좌로 분열하여 철저히 당국의 공격에 노출돼 온 노동조합이 단결을 지키며 조직을 확대하여 약진했다는 역사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없습니다. 우리는 그 벽을 어떻게 해서라도 돌파할 결의입니다.

정세가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JR을 둘러싼 정세가 다시한번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는, 6월 3 ∼ 4일에 개최된 JR 총련대회에서 예전부터 JR 총련으로부터의 탈퇴를 표명하던JR큐슈 유니온의 제명이 결정되었고, 6월 21일에는 JR동(東)노조 중의 반본부파가 분열되어 새 노조(JR노조)를 출범시켰다는 사실입니다. 현재로서는 몇 십명 규모로, 예상되는 니가타지방본부, 나가노지방본부가 합류하더라도 그 자체로서 아무런 조직적 전망도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 분열은 어느 쪽이 회사의 충실한 앞잡이인가를 다투는 것일 수밖에 없는 것도 명확합니다.
그러나 이 사태는JR동일본회사와 가쿠마루파의 결탁체제가 불협화음을 내며 붕괴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결탁체제의 붕괴는 분할민영화체제의 토대가 붕괴된다는 것이며, JR을 둘러싼 정세는 일시에 대격동의 와중에 들어갈 것입니다. 드디어 조직확대를 위한 결전의 때가 도래하려 하고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이런 정세에 뒤쳐진다면 우리 자신도 격류 속에 삼켜질 정세이기도 합니다.
한편, 6월 28일에 국토교통성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아마가사키사고에 관한 최종보고를 발표했습니다. 사고로부터 2년 2개월 이상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국토교통성 자신의 책임회피로 일관하는 전혀 내용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시장원리에 맡겨야 하는 것은 시장원리에 맡긴다’‘철도사업자의 자주성, 주체적 판단을 존중하도록 한다’라고 해서 안전에 관한 규제를 전면적으로 완화하고 모든 것을 철도사업자의 자유재량에 맡긴 것은 국토교통성입니다. 107명의 승무원과 승객을 죽인 책임은 국토교통성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이 최종보고는 (1)‘일근교육’(사고를 낸 운전사에 대한 비인간적인 재교육제도)이 이상운전의 심리적 요인이 되었다고 판단하고, (2)지령과의 무선교신에 열중한 것이 브레이크 조작이 늦어진 원인이라고 판정하고, (3)인적피해를 줄이는 차량의 필요성을 건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안전운전투쟁을 비롯한 우리의 투쟁과 주장의 압도적인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JR동일본회사는 그것을 처분해 왔습니다.
사고조사의 최종보고를 둘러싸고 투쟁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투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도로치바는 반합-운전보안투쟁의 본격적인 복권을 위하여 투쟁을 더욱 강화할 것입니다.
(끝)

국철지바동력차노동조합(DORO-CHIBA)
Chiba-shi Chuo-ku Kaname-cho 2-8, 260-0017 JAPAN
TEL +81-43(222)7207 FAX +81-43(224)7197
홈페이지 http://www.doro-chiba.org/korean/korean.htm
e-mail doro-chiba@doro-chib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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